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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편을 빚으며
    그 때의 추억 2022. 10. 3. 11:44

    5~60년 전의 고향 풍경은 윗마을 아랫마을이 있는 꽤나 세대수가 많은 동네였다.
    일년 중 보름달이 최고조로 밝다는 한가위가 오면 어린애들은 한복이나 치마 블라우스 운동화가 추석빔으로 주어진다. 추석 전 5일장이 들어서면 엄마의 속바지 주머니에선 황금빛을 발하는 지폐가 서슴없이 역할에 충실하다.

    지금이나 수십년전이나 추석 무렵 낮 더위는 짱짱한 여름날 못지 않으니 추석빔으로 장만한 새 옷가지들은 땀범벅이 되어도 개의치 않고 몇 날 며칠을 아랑곳 않고 패션 유희로 들떠 있었다. 어린이였을 때나 할머니가 된 지금도 새 옷에 대한 환상은 신비스럽다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한가위 전날은 추석빔을 입고 할머니댁으로 신명 난 발걸음의 형태가 된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엄마급 세대에선 평소에 쓰던 사기그릇은 잠시 휴식을 하는 한편 유기그릇이 득세를 한다. 기와 가루로 세제를 만들고 지푸라기가 수세미가 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유기그릇의 사명은 값어치 있는 작품이었다.

    뒷뜰에는 대봉이 익기도 전에 생감 한 항아리를 된장을 풀어 우려내면 과일이 귀한 시절 손님맞이 한상차림에 그만이었다. 또한 쑥떡은 쓰다 하여 본추떡을 해 먹는데 깊은 산에나 가야 있다 하여 귀한 음식에 속하였다.
    설탕이 귀한 시절 조청도 빠지지 않는 추석 음식이었다. 남편은 먹성이 좋아서 어른들 몰래 퍼 먹었던 이야기로 거든다. 송편의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게 빚었는데 그것 또한 일 년에 한 번 먹어보는 명절의 음식이었다.

    (이미지출처:http://image.hnsmall.com/images/goods/462/19461462_g.jpg)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면 윗동네 처녀들이 강강술래 집단을 만들어 아랫동네 회관으로 모여들면 특별히 약속한 적도 없으나 일심동체가 되어 손에 손잡고 강강술래를 외치며 잔치분위기가 익어간다. 내 할머니까지 동조한 한마당 단합은 우리 남부지방의 민속놀이다.

    정월 구정처럼 세뱃돈은 받지 않지만 가족이 한마음이 되고 추석빔에 넉넉한 음식으로 나누며 배려하는 모양새는 가난했던 시절 유일하게 추석 설 명절이 있기에 여유있는 한 날을 맞이해 볼 것이다. 꼬막만큼 앙증맞은 송편을 빚으며 기억 속의 그날을 꺼내 보았다. 보름달은 내일은 더욱 찰지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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