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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당신-어머니를 추억하며
    나의 사람들 2021. 12. 23. 09:20

    위대한 당신 

     

    가을비가 낙엽 위로 뚝뚝 떨어지는 밤 당신이 그립습니다.

     

    나의 기억창고는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시절의 알람이 울립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치맛바람일까요?

    당신은 그리 세련되지도 예쁘지도 않은 외모로 학교 하굣길에 얼핏 보면 교무실 선생님들의 간식거리를 도맡아 자주 등장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 대한 선생님들의 관심도는 특혜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신용보란 별명이 붙었답니다. 그땐 왜 그리 당신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당신이 달아준 날개를 늘 접으려 했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선 계급장도 달았고 당당하게 앞장서서 학급관리도 했답니다. 그리고 또 당신은 흥이 왜 그리 많은지 학교 운동회 때에는 빠지지 않고 장구하나 어깨에 메고 구룡대에 자리를 잡고 흥을 돋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운동장을 중심으로 흥에 겨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들과 몇 바퀴씩 돌며 덩실덩실 어깨춤으로 공동 분모를 만들었지요. 벌써 50여년이 지난 추억입니다. 

     

    그리고 입심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동네잔치며 동네 여행 나들이에 나서면 햇살 같았으며, 청년 같은 기개가 월등했던 당신 흥으로 인한 유전자 덕분에 땅 끝 마을에서 서울대 음대생이 몇 명이나 나왔는지.

     


    당신은 한 집안의 맏며느리.

     

    체구는 작았지만 우뚝 솟은 종탑 같은 존재. 열아홉 처녀가 꽃가마 타고 이 씨 집안에 시집와 집안의 대소사 다 관여하시고 시부모님 모시며 줄줄이 학생이었던 시동생들 학업 뒷바라지며 살림살이 내주는 일 모두가 당신 몫이었지요.

     

    태평양 같았던 마음씨 하면 당신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또한 아버지의 든든한 내조자이었습니다. 손님맞이는 왜 그리 쉽게 하시는지 뚝딱뚝딱 순식간에 안주거리며 찌개 거리며 서툶 없이 내놓으셨습니다. 돌이켜보니 건축도 몇 번 하였네요. 상가를 지으시고 새집 건축을 어찌 그리 일꾼들을 잘 다스리는지 늘 그 상황들을 즐기시는 듯했습니다. 사실 그런 일들은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45세에 얻은 2남 5녀 중 막내딸.

     

     또 딸이라며 낳자마자 윗목에 눕히며 냉대했다 합니다. 이모들의 정성으로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는 했지만요. 

     맞선을 보았는데 키가 아담한지라 외갓집 계단에 서서 키를 커버하셨다 합니다.  외갓집 마당이 아래 마당 윗 마당 두 개가 있었는데 거기에 계단이 있었답니다.  키 작은 외모를 좀 더 늘리려 비스듬히 서서 커버하신 거지요.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보고는 짝꿍의 키가 큰 줄 알았다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착시효과입니다. 

     

     당신은 안목은 있어서인지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편을 곁에 두고 영리한 척 앞장서서 단속하십니다. 어느 곳을 납시어도 뒤처지지 않고 한껏 반짝이는 북극성처럼 표적을 내시는 그분. 어떤 젊은 날에는 동네방네 다니며 옷감 장사도 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도 되고 자식들에겐 시골 정서에 안 맞게 넉넉한 주머니를 채워주셨던 당신. 엊그제 결혼식에 갔더니 당신 노인대학 동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네요. 저의 4남매들은 제발 당신 좀 챙기세요. 남만 챙기지 말고요. 그렇지만 생을 마감한 그날까지 배려가 우선인지라 오로지 삶의 전부를 내어주었습니다.


    현명한 아내.

     

    남자는 늘 폼 나게 옷을 입어야 한다며 반질반질 다림질해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영국 신사로 만드셨던 당신. 당신 짝꿍은 붓 한 자루 들고 오며 가며 서예를 하셨고 신문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으시던 그분을 탓하지 않고 당신은 오로지 궂은일을 다하시고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옷을 유난히 좋아했던 당신.

     

    그땐 저의 생활도 넉넉하지 않았고 크게 귀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옷 좋아하는 취미가 당신 닮아서 인지 패션학과에 5학기 차 공부하고 있답니다. 살아서 다시 제 곁에 오신다면 골고루 원하신 만큼 챙겨드리며 좋아하신 패션 맘껏 해드릴 텐데요. 이 가을 깊숙이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은 평화로우시고 참으로 멋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표본.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먼 길을 떠나신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어슴푸레 달빛이 당신에게 향하게 합니다. 그립습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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